장수읍 역사문화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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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 역사문화탐방로

충절의 여인 논개와 함께 떠나는 장수 역사 문화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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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1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논개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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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1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논개사당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님의 이 시를 들어보셨나요?
이 시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인 인물을 기리는 장소가 바로 이 곳 입니다
장수는 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배출한 곳으로 이곳에서 저 ‘논개’도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그 ‘논개’가 바로 저죠.
지금 도착한 이곳은 저의 이름을 딴 ‘논개사당’이고 이곳은 ‘의암사’라고도 불립니다.
그 이유는 제가 몸을 던진 남강의 바위를 ‘의암’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합니다
1955년 이곳은 장수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원래 남산공원에 지었던 것을 197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매년 음력 9월 3일이면 이곳에선 저를 위한 제사를 지내는데요, 그 날이 제 생일이기 때문이죠. 장수를 둘러싼 주변산세와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계십니다.

‘장수읍 역사문화탐방’을 시작하기 전에 저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점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를 ‘의기’ 즉 ‘의로운 기녀’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저는 기녀가 아니랍니다.
저는 장수현감 최경회의 후실이었어요. 제가 열일곱에 그 어른의 후실로 들어가 부부의 연을 맺게됩니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치시고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진주성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군대를 정비하고 10만 왜적과 결연히 맞섰지만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기에 이르죠. 진주성 함락의 책임을 통감한 김천일 장군 등과 더불어 남강에 몸을 던져 자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지아비를 잃은 저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저는 결심을 하게됩니다.
꼭 복수를 하겠다구요.
그리고 곧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왜장들의 연회가 벌어지던 촉석루에 기녀를 가장해서 잠입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왜장은 저를 마음에 들어 했고, 저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그를 끌어 앉고 남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저에 대한 오해가 좀 풀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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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2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논개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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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2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논개영정

일단 많은 분들이 논개사당에 오시면 제 얼굴에 관심을 두시더라구요.
도대체 얼마나 예쁘기에 왜장이 반해버렸나 하고요. 논개사당에 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영정이 있으니 한 번 보세요. 남들이 그러는데, 제가 반듯한 이마와 초생달 같은 눈썹을 가진 전형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동양 미인이라고하더군요.
제가 제 미모를 소개하려니 너무 쑥스럽네요. 다음 얘기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목소리로 들어보시죠.

“현재 의암사에 걸린 논개 영정은 지난 2008년 새롭게 그려서 안치된 작품입니다.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가 2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완성한 걸작인데요, 영정 속 논개의 면면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우선 논개의 얼굴은 이른바 ‘진수아미’의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습니다. ‘진수’라 함은 옛 미인의 이마가 이루는 가장 이상적인 각을, ‘아미’는 역시 미인의 눈썹 위치와 모양을 말하는데요, 진수아미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이 논개영정이야 말로 가장 전형적이고도 전통적인 동양 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의복도 까다로운 고증을 거쳐 완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논개가 살았던 조선 중엽의 부인들이 즐겨 했던 ‘가체’로 꾸며진 머리인 ‘체계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당시 의복 문화를 엿보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참고로 가체란 진짜 머리에 덧붙여 꾸민 머리를 말한답니다. 이 가체는 당시 여인들이 부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사치이기도 해서 한때는 가체금지령이 반포되기도 했지요. “
사실 이 작품을 보며 더욱 놀라운 것은요, 제 얼굴과 체격을 표현하는데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거예요.
제가 신안 주씨라는 것과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는 걸 감안해서 그린 건데요, 이 인근에 살고 있는 제 후손들 중에 스무 살의 여성 평균 골격과 얼굴형을 참고해서 제 모습을 그렸다고 하네요. 제가 봐도 아주 많이 닮은 것 같긴 해요.
아! 혹시 이 영정을 보시면서 독특한 점을 발견하지 않으셨나요?
제 얼굴을 정면에서 보시고, 측면에서 보시고, 아래에서도 한 번 쳐다 보세요.
그 어디에서 봐도 제가 여러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요. 이 영정은 점을 일일이 찍어서 그려냈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 봐도 제 눈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답니다. 그걸 잘 모르셨다면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꿔서 바라보세요.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이제는 충절비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시죠 논개사당 오른편을 보면, 1846년에 장수현감이 세워주신 충절비가 있는데요, 이 비는 제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지 250년이나 지나서야 세워졌답니다. 그만큼 제가 살았던 조선시대에는 여인의 의로운 행적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장수향교와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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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3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장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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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3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장수향교

조선 시대에는 지방에 유생 즉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 있었어요. 바로 ‘향교’라는 곳인데 주로 유학을 교육하던 지방 교육 기관이죠.
장수에도 아주 유서 깊은 향교가 있는데요, 지금 우리가 찾은 ‘장수향교’랍니다.
사실 이곳은 조선 태종 7년에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가 그곳의 터가 좋지 않아
지금 이곳으로 숙종 12년에 옮겨졌죠.
‘장수향교’는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고, 또 지방의 젊은 유생들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지은 지방교육기관인데요, 이곳에서 유생들은 과거도 준비하는 등 공부를 했지요.
장수 향교는 지금껏 잘 보존 돼 있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는데요, 특히 이곳에 보관돼 있는 서적들은 지방향토사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건축양식도 다양해서 당시 건축문화도 잘 알 수 있는 공간이랍니다.

자, 일단 장수학교를 들어서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쳤던 명륜당이구요, 다른 하나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죠
장수향교 명륜당은 대성전과 함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건물인데요, 16세기 중국의 고관대작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니 당시 유행이 어땠는지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가 아닐까 싶네요.
명륜당은 학생들이 유학의 경전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학문은 물론이고, 인격을 수양하는 공간이었지요
특히 명륜당의 특징은 바닥에 하수도 같은 물길이예요.
이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흐르는 물길을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하네요
풍수적으로 기가 강한 곳엔 화재가 자주 일어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물길을 살려두었고 원활한 기 흐름을 위해 가끔 돌 뚜껑을 열어두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어느 향교를 가나 자리하고 있는 은행나무가 이곳에도 있는데요. 이는 바로 공자 때문입니다.
흔히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壇) 즉 '은행나무 단'이라고 부르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연유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유학이 들어오고 수많은 향교와 서원이 건립되면서 그 뜻을 기리고자 은행나무가 심어졌습니다
스스로 독특한 향을 피워서 벌레가 들지 못하게 하는 은행나무처럼 잡념을 멀리하고 늘 학문에 정진했던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징표처럼 여겨 향교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장수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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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4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장수향교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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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4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장수향교대성전

장수향교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대성전’이랍니다.
대성전은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적 건물 중 하나입니다
정면 3칸과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즉,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책을 반쯤 펴놓은 팔(八)자형으로 되어있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옛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죠. 장수향교 대성전은 6백 년이 넘은 건물로 우리나라 200개가 넘는 향교의 대성전 중에서 제일 오래된 곳인데요.
특히 내부에는 기둥이 없고, 외부에 따로 기둥을 둬 지붕을 얹은 건축방식은 당시 향교 건축 양식을 나타내는 요소로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특히 대성전의 현판은 명필 한석봉 선생이 쓴 것이라고 하니 대성전의 문화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사실 숙종 때 이곳으로 향교를 옮긴 다음에 대성전 앞을 흙으로 덮었는데요, 이곳이 자꾸만 습기가 차고 물이 고여 있더랍니다.
그래서 흙을 걷어냈는데 거기에서 박석이 발견됐다네요.
박석은 대궐이나 왕릉등에서 통행의 편리함을 주기위해 설치한 넓적한 화강암 돌판으로 주로 궁궐 건축에 사용되는 정원 바닥재입니다. 근정전의 앞마당인 전정(殿庭), 종묘의 월대(月臺), 왕릉의 진입로인 참도(參道) 등에 깔려 있는 고급 포장 재료이죠.
이곳의 박석도 흙을 드러내어 예전의 멋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향교의 기능 중 하나가 성현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이곳에서 모시고 있는 성현들과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문화관광해설사의 목소리로 들어보시죠.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27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제사가 열립니다. 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마다 분향을 하는 것에 더해, 1년에 두 번 씩 대제를 지내는데 음력 2월 춘계석전대제와 음력 8월 추계석전대제 등이 그것입니다. 이때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수 출신의 유림들까지 모여 큰 제사가 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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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정충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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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정충복비

대성전을 둘러보셨다면 이제는 장수향교 오른쪽에 있는 비석을 한 번 봐주세요.
아담한 비각이 있고, 그 안에는 한 눈에 봐도 꽤 오래 돼 뵈는 비석이 있는데요,
‘충복 정경손’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정경손이라는 인물을 기리는 비각과 비석이죠. 그렇다면 왜 이곳에서 이 사람을 기리는지 알아볼까요?

때는 정유재란 당시.
왜군들은 조선팔도를 다니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약탈하고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불태워 문화를 말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지요.
그의 일환으로 왜군들은 각지의 향교까지 공격을 했고 급기야 장수향교 앞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문묘를 지키고 있던 정경손 선생이 향교의 교복을 차려 입고 경서를 외우며 홀연히 왜장 앞에 맞섭니다

[정경손]
돌아들 가라! 이곳은 절대 네 놈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

[왜군장수]
뭐라? 지금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냐?

[정경손]
내가 지키고 있는 이곳에 들어오려거든 내 목을 베고 가라! 그러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길을 터줄 수 없다!!
긴 캍을 빼든 왜군장수의 말 앞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정경손 선생의 모습에 왜군들은 당황합니다.

[정경손]
유생들이 학문을 닦고, 성현들이 모셔진 곳에 칼과 총을 든 왜구들을 들게 할 수는 없다! 이곳을 지나려거든 내 목을 치고 가라!!

[왜군장수]
흠...참으로 기개가 대단하구나..

자신의 목숨을 다해 향교를 지키려 했던 충복 정경손 선생의 기개에 왜장과 왜군들은 감복하기에 이릅니다
정경손 선생과 마주했던 왜장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즉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쪽지를 향교에 붙여놓고 떠나는데요, 그 다음에 찾아 온 왜군들은 그 글을 보고 향교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현재의 장수향교와 대성전이 현존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데는 이토록 홀로 왜적과 맞선 충복 정경손 선생의 강건한 기개 때문입니다. 장수향교를 지킨 그의 절개와 의로운 행적은 비석을 세워 기릴 만큼 후세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장수향교 앞에 있던 “하마비” 즉 지위를 막론하고 이 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이곳을 들어오라는 비석이 있는 이유도 충복 정경손 선생의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함이겠죠
의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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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6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의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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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6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의암송

장수군청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아담한 군청건물보다 그 앞에 있는 소나무가 더 눈에 띄실 거예요.
한 눈에 ‘와!’하고 감탄사가 나올 만큼의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모양새를 지닌 소나무죠.
척 봐도 오랜 세월을 견디고 버텨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이 나무를 장수에서는 의암송이라고 합니다. 의암송이라고 하니 저, 논개를 기리고 있는 의암사가 떠오르시지요?
의암사와 의암송이 어떤 관련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오래전 장수 관아 뜰에서 자라던 소나무로 논개의 절개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심은 것은 아닌지 추정될 뿐입니다.

이 소나무의 모습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답니다.
수령이 약 4백년으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노거송은 높이만도 9m, 가슴둘레가 3.22m에 이르는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시계방향으로 뒤틀어지듯 나선형을 이루고 있어 마치 용이 몸을 꼬며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를 닮은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윗부분에 풍성하게 뻗은 줄기들은 반듯한 수평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독특하고 유려한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죠?

누가 심었고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암송은 오랜 세월동안 군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답니다.
독특한 생김과 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397호로 지정됐습니다
장수 의암송 언제 봐도 참 멋지네요
방촌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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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7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방촌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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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7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방촌공원

이제 둘러 볼 곳은 방촌공원입니다. 이곳은 아주 유명한 분과 연관이 깊은데요,
바로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입니다
황희 정승은 고려 우왕 때 관직에 나섰다가 조선의 개국과 함께 은둔 생활을 했구요, 그러다가 다시 조정에 나가서 세종대에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죠.
그가 오랜 기간 재상직을 유지하며, 존경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였을까요?
그 비결로는 원칙적이고 소신 있는 정치적 성향, 청렴함,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성품 등을 꼽습니다.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도 황희 정승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죠

조선시대의 명재상이면서 중용의 미덕을 알았던 방촌 황희 정승과 이곳 장수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시죠?
황희 정승의 본관이 바로 장수랍니다.
또한, 태종의 신임을 얻다가 양녕대군의 세자폐위에 반대하여 장수의 장계면 월강리로 유배당하기도 했으니 황희 정승과 장수의 인연은 꽤 깊다고 할 수 있지요.

장수읍 장수리에 아담하게 조성된 방촌공원은 선생의 호를 따 지난 1996년 조성된 곳입니다. 주변에 주택가와 평범한 도로로 둘러싸여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선생과 장수군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장수군과 황씨 전라북도 종친회에서 애써 마련한 공원이죠.
공원에 들어서면 마치 옛 선비들이 지금도 시 한 수 읊조리며 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을 법한 정자 한 동과 황희 정승의 동상이 단출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황희 정승을 기념하는 곳이자 동시에 마을 주민들의 푸근한 휴식처가 되어 주고 있는데요, 마을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뒤 정자를 오르내리며 웃고 뛰어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애로운 정치를 펼쳤던 황희 정승의 마음이 넉넉히 전해지는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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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노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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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_장수역사문화탐방로_노하숲

사실 방촌공원 말고도 장수에서는 황희 정승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어요.
바로 노하숲인데요. 오래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들어 찬 이곳은 황희정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답니다. 이 숲을 만든 사람이 황희 정승의 아버지 황군서 선생이시거든요.
이 분이 장수 현감으로 부임해 와 이곳을 만들었는데 왜 이 숲을 만들었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목소리로 들어보시죠.

“당시 황희 정승의 모친이 단봉산 자락에서 훌륭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일대를 보호하는 숲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노하숲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노하숲이라 불리지만 원래는 봉강숲 이었다고 합니다.
노하마을 뒷산의 형세가 봉황과 같아서였다는데요, 풍수지리적으로도 봉황이 살며시 내려와서 앉은 형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였으니, 왜 황희 정승의 모친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재상을 잉태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군요

지금은 2004년 우회 도로가 나면서 두 구역으로 나뉜 노하숲이지만 오랜 수령의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이 들어선 노하숲의 정취는 장수군의 또 다른 매력을 안겨 줍니다.
조성된 지도 6백년이 훨씬 더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노하숲 부근에는 이 장수천이 흐르고 있어 숲의 아름다움에다 한결 운치를 더해주고 있어요

현재 노하숲은 장수는 물론 인근 지역민들의 휴식처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오랜 역사와 산림자원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마을 숲’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이왕 오셨으니 차분히 앉아서 노하숲의 기운을 좀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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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9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창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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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9_장수역사문화탐방로_창계서원

노하숲을 지나오셨다면 이제는 ‘창계서원’을 보실 차례입니다
근데 여러분 서원과 향교의 차이는 알고 계신가요?
장수향교를 둘러보면서 말씀을 드렸지만 향교는 젊은 유생들이 유학과 학문을 배우고 유교의 성인들을 모시는 ‘공인 교육기관’이었다면, 서원은 지방에 터를 잡고 있던 양반들이 학문을 연구하면서 대유학자들을 기리는 ‘사설 교육기관’이었답니다.

그 중에서 창계서원은 황희 정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죠.
보시는 것처럼 민가 가운데 옛스러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죠.
규모 역시 소담스러워 정감이 넘치는데요, 원래 창계서원은 조선 숙종 21년인 1695년에 황희 정승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으나 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는 수난을 겪습니다.
그러다 1958년 장수군의 선비들에 의해 복원되어 옛 서원터에 교육공간이었던 상현재와 황희 정승을 비롯한 5분의 위패를 모신 창계사 등의 건물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황희 정승을 기리는 곳은 전국에서 단 세 곳만 있는데요, 파주의 방촌영당에는 영정이, 상주의 옥동서원과 이 곳 장수의 창계서원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죠

창계서원의 계단을 따라 정문에 들어서서 상현재를 지나면 이 건물 뒤로 난 좁고 가파른 계단을만나게 됩니다.
이 계단으로 오르면 선현의 위패를 모신 ‘창계사’라는 사당으로 이어지는데요 전체적으로는 직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매년 음력 9월 10일에 지방 유림 즉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창계사에서 제사를 지내는데요, 연세 지긋한 유림들이 오르기에는 꽤 수고스러운 계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시대의 대유학자들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찬찬히 창계서원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타루공원과 타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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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_장수역사문화탐방로_타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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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_장수역사문화탐방로_타루공원

이제 장수 역사문화탐방로에서 마지막인 타루공원입니다
장수에는 ‘3절’이라 불리는 충직하고 절개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누군지 아시나요?
예 맞아요, 저 논개와 장수향교를 지킨 정경손 선생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 누굴까요?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인 백씨라고 불리는 사람이랍니다. 이 사람이 이곳 타루공원의 주인공이지요. 이곳에는 비석도 함께 세워져 있는데요, 비석의 이름은 ‘타루비’랍니다. 그렇다면 의인 백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장수의 자랑이 됐는지 직접 만나볼까요?

“귀하신 ‘논개’님께서 저를 이렇게 소개해 주시니 참으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저는 숙종 때 사람으로 백씨라고 불립죠. 제가 모시고 있던 분은 장수 현감이던 조종면 어르신이었는데요, 어느 날 어르신과 함께 전주에 가기 위해서 이곳, 타루 공원 뒷산의 암벽근처의 비탈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근데 느닷없이 꿩 한 마디가 수풀 새에서 푸다닥 하고 날아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소리에 그만 현감어르신을 태우고 있던 말이 놀라 날뛰게 됐고 그때 어르신은 말에서 떨어져 어떻게 할 틈도 없이 기슭 아래까지 굴러내려 하천에 빠져 그만 세상을 떠나셨지요.
제가 좀 더 주변을 살폈더라면, 제가 말을 빨리 안정을 시켰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저의 소명을 다하지 못함이 너무나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꿩과 말을 그린 다음에 그 옆에 ‘눈물을 흘린다’는 ‘타루’라는 글씨를 쓰고 현감어르신이
빠진 그 하천에 몸을 던져 현감어르신 곁으로 갔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르신을 모시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의 이런 사연을 들으시고 후에 현감으로 부임하신 최수형 어르신이 저를 위해 이렇게 타루비석과 타루 공원까지 세워주신 겁니다.
저는 할 도리를 한 것 뿐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제가 저희 어르신께 너무나 죄송스러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저의 타루비 가까이에는 제가 모시던 조종면 어르신의 ‘불망비’도 있는데요, 그 크기가 타루비에 비해 눈에 띄게 작다는 겁니다. 주변에서는 의로운 일을 한 저의 비석이 더 큰 것이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저로서는 좀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네요.
아마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의로운 이를 더 높이 숭상하는 장수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절개가 있고, 기상이 있고, 중용의 미덕이 있는 장수의 역사문화탐방로.
저 논개와 함께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저의 고향이지만 저도 잘 몰랐던 다양한 역사의 현장을 두루 다니다 보니 장수 사람들의 ‘의로운 이’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와 사랑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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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개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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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논개영정과 충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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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장수향교와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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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장수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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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충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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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의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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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방촌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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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노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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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창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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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타루공원과 타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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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7.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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