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남면 향토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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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화ㆍ이정근부자효자려

이동화는 성주인으로 고은 지활의 후예이자 전명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세상의 칭송이 자자했다. 또한 학식과 덕망을 겸했다. 조정에서는 이 효자에게 증직으로 "증사헌부감찰가선대부예조참판동질의금부사"의 벼슬을 내려 효성을 칭찬했다. 이정근은 이동화의 아들로 부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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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택신도비

김남택의 자는 성수, 호는 손재 본관은 함창이다. 그는 고려말 공민왕 19년(1370) 현 계남면 침령마을에서 태중대부 원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그는 조선조에 들어와 세종조에 예조판서를 역임하다 아우 남중과 함께 경상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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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정씨지려

1643년(인조21년) 계미 6월 8일에 남편이(서문 배) 하인을 데리고 들에 나간 사이에 흉한이 침입해서 정씨의 손목을 잡으니 손목을 끊어 버리고 식음을 전폐한지 7일만에 목 매어 자살하였다.(1643. 6. 15) 이는 고 열부 왕응의처 이씨 와 다를 게 없는데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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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욕정

장계,계남면 유지 15명이 친목을 도모하고 시와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1962년 건립(현판글씨 : 강암 송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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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남정

누각으로서 사방으로 돌아가면 난간이 있다. 정자 안에는 11개의 현판이 있는데 이 글들은 대개 을축년과 병인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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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유씨효열비

부인은 진주유씨이며 수산후(壽山后) 학생(學生) 정석(禎錫)의 처(妻)이다. 자라나면서 재질이 과인하였고 자태가 아름답고 강상예절이 뚜렷하였다. 출가하여서 시부모의 환우에 머리를 베여서 팔고, 남의 고용살이를 하여 부양하였고, 남편이 병이나서 위태로워지자 단지(斷指)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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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박씨기행비

충주 박씨 기석의 딸로 연안 송인갑에게 출가하여 일제때 남편이 화태(樺太)(지금 사할린)로 끌려가는 바람에 홀로 자녀들을 키우던 중 1956년 홍수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외아들을 구하고 타계하였다. 아들이 모친을 추모하는 비(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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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효열비

부인은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증(贈) 병조판서 모하당(慕夏堂) 김충선 장군의 9대손 김세원의 딸로 장성하여 문절공(文節公) 양사도의 후예 우재규식(愚齋圭植)에게 출가 90대의 시부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1891년 남편이 병에 걸려 위독하자 자신의 허벅지를 도려 회복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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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면 총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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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리 (☎ 063-350-2955)
최근수정일
2017.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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